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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박순욱의 술 기행 [2021. 06. 15. 조선일보 박순욱 기자]

2021-06-16

[박순욱의 술기행](52) “위스키보다 더 맛있는 ‘마한 오크’, 올 추석에 맛볼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사장 출신 스마트 브루어리 오세용 대표
1만2000명 직원 거느리다가, 고향 청주에 1인 양조장 차려
쌀을 주원료로 처음으로 보드카, 진 만들어 쌀증류주 외연 넓혀
일년 오크통 숙성시켜, 위스키보다 더 위스키같은 ‘마한 오크’ 곧 출시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1.06.15 14:59


직원 수만 1만2000명, ‘세계 톱3 반도체 생산 기업’인 SK하이닉스 사장을 하다가, 직원 한명 없는 ‘1인 증류주 양조장’을 차린 사람을 아는가?

15년간 다닌 삼성전자를 퇴직한 때인 2009년, 그의 직함은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IPT실 부사장’이었다. 삼성전자에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반도체사업부에서만 10년 이상 임원을 했고, 2012년 스카웃된 SK하이닉스에서도 3년간 제조/기술 부문 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2015년 만 61세에 은퇴했다. 한마디로 ‘성공한 샐러리맨’이다.

그는 SK하이닉스 사장 부임 기간 내내 변화와 혁신을 강조, ‘생산 운영시스템과 임직원의 의식을 세계일류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SK하이닉스 사장 부임 첫해에 발생한 중국 공장 화재사고를 초단기에 복구하고, 생산라인 전반의 효율과 수율의 획기적 향상으로 막대한 경영이익을 창출한 업적도 거뒀다.

이쯤되면 그의 다음 이력은 모교인 서울대 공대 석좌교수 정도가 어울릴 것 같은데, 그의 선택은 의외였다. 그는 고향인 청주로 내려가 증류식 쌀소주를 만드는 지역특산주 양조장을 차렸다. 연간 매출이 얼마냐고? 잘 나가던 시절, 그의 한달 급여도 안된다. 2019년에 설립된 스마트브루어리 오세용 대표 이야기다. 그는 전통주 업계에 뒤늦게 입문해서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쌀을 주원료로 외국이 원조인 보드카, 진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비자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스마트 브루어리의 첫 제품은 20도 쌀소주 ‘에스 원이다. 이름부터가 ‘대표의 전 직장인 삼성을 연상시킨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스마트 브루어리’의 첫 제품이라서 이름을 ‘에스(S) 원(1)’이라고 지었지만, 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의 보안사업 업체 회사명과도 같았다. 현재 이 제품은 미국 수출을 위해 잠시 생산을 중단하고, 알코올 도수와 라벨 등을 리뉴얼하고 있다.

오세용 대표가 혼자 지키고 있는 양조장을 최근 기습 방문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기 때문에 사실 ‘기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오세용 대표는 기자의 방문을 한사코 거절했다. “아니, 이 촌구석까지 멀리 오실 필요가 있나요? 담에 서울에서나 한번 봅시다.” 그의 이 말을 뿌리친 이유는 그 비슷한 말을 거의 일년간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자의 집요한 인터뷰 요청을 그는 ‘아직 언론에 노출할 준비가 안돼 있다’, ‘연말(2020년)에 신제품 출시하거든 보자’는 등 갖은 이유를 대며 피했다.

스마트 브루어리 양조장은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기자가 이용하는 네비게이션인 네이버 지도 검색에서도 스마트 브루어리는 찾을 수 없었다. 주소 검색을 통해 겨우 찾아간 양조장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기자가 수년간 지방의 크고작은 양조장을 부지런히 다녔지만, 이곳만큼 철저히 ‘1인 양조장’인 곳은 거의 없었다. 술 만드는 작은 양조장 옆에 혼자 쓰는 사무실, 그 뒤 간이숙소가 전부였다. 흔한 술 진열장 하나 없었다.

술 사러 오는 사람마저 반기지 않는 듯 보였다. 입구는 물론 건물 어디에도 그 흔한 양조장 문패 하나 붙여놓지 않아, 이곳이 무얼 하는지는 동네 사람들도 모를 정도였다. 그는 “30년 이상을 몸담아온 한국 반도체산업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중인데,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양조장이 집필실로 딱 좋다”며 양조장 주인답지 않은 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양조장 대표 노릇을 소홀히 하고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에스 원(알코올 도수 20도)을 시작으로 쌀 소주 ‘청람’(25도), ‘마한’(36도), 보드카 ‘무심’(45도), 진 ‘청평미향’(45도) 등을 잇따라 술시장에 내놓았다. 이중 쌀을 주원료로 만든 보드카와 진은 ‘국내 최초’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보드카와 진 제품이 기존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쌀 술로 보드카와 진을 만든 건, 스마트 브루어리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진과 보드카는 일반적으로 밀, 감자 등의 원료로 만든 술을 증류한 원액을 이용해 주니퍼베리를 비롯한 각종 허브를 넣거나(진),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시켜(보드카) 만든다.

그러나, 그가 만든 보드카 무심(45도, 375ml 2만원)과 진 청풍미향(45도, 500ml 2만5000원)은 시장에서 아직 존재감이 거의 없다. 보드카와 진이라는 술 자체가 칵테일 베이스(원주)로 주로 쓰이는데, 그가 만든 술은 가정용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집에서 칵테일을 즐겨 만들어 마실 정도로 칵테일 문화가 보편화돼 있지 않다. 그걸 애초에 그가 몰랐을까?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걸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나마 쌀소주 청람, 마한이 그럭저럭 팔린다.

때문에,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가 생뚱맞게 전통주 창업에 뛰어든 것 못지 않게, 스마트 브루어리의 포트폴리오(제품 구색) 자체가 무모하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전통술 전문가의 의견이다.

“다른 지역특산주, 전통주 양조장처럼 증류식소주나 만들어 전통주 마케팅으로 갔으면 신생양조장으로서 훨씬 편하게 홍보하고 판매했을텐데 스마트 브루어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쌀 원료 증류주로 보드카와 진을 만들었다. 신생 양조장 대표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국적 보드카, 진을 만들어 국산 증류주의 외연을 넓힌다는 시도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주목할 만한 오세용 대표의 또다른 시도는 ‘오크통 숙성’ 소주다. 이곳 양조장 쌀증류주 청람과 마한은 증류 후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두어달 숙성시킨 뒤 병입해 세상에 나간다. 그런데, 최근 스테인리스 탱크가 아닌, 국산 오크통에서 일년간 숙성시킨 마한을 시음용으로 지인들에게 맛보였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올 추석 즈음해 정식 출시할 예정으로 이름도 ‘마한 오크’(40도)로 미리 지어놓았다.

일년 오크 숙성 ‘마한 오크’는 색상부터가 기존 투명한 쌀소주와 확연히 대비된다. 프리미엄 위스키 색깔로 흔히 얘기하는 호박색보다 훨씬 진해, 붉은 빛이 강렬하다. 맛과 향은 어떨까? 한마디로 ‘위스키보다 더 위스키 같은 술’이다. 오크통에서 겨우 일년 숙성한 위스키는 위스키로 취급도 안해주지만, 쌀 증류주의 일년 오크 숙성은 한미디로 ‘임팩트’가 있었다. 오크향이 진하면서도 쌀소주 특유의 부드러운 곡물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오크 숙성 쌀소주의 원조는 화요X.P다. 2005년 국내 프리미엄 증류주시장을 개척한 화요 시리즈 중 가장 비싼 화요X.P는 3년을 오크통에서 숙성한 쌀증류주다. 작년에 프랑스로 대량수출하기도 하는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 마한 오크는 숙성 기간을 일년으로 줄인 대신 가격(375ml 2만5000원)을 화요X.P의 절반 정도로 책정했다.

오세용 대표가 기자를 처음 안내한 곳은 발효실이었다. 400l(리터)용량의 발효탱크가 10개, 냉각쿨링시스템을 갖춘 대형 발효조는 2개 별도로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통 누룩이 아닌 개량누룩의 일종인 입국을 사용해 100% 쌀 술덧을 만든 뒤 증류과정을 거친다. 오세용 대표는 “증류주용 술덧 발효기간은 일반 막걸리와 좀 달라, 3~4주 정도(일반 막걸리는 10일 내외)로 발효기간을 좀 길게 가져가면 술맛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발효가 끝나면 증류 공정으로 넘어간다. 증류방식 역시 전통 상압증류방식이 아닌 감압증류방식을 주로 쓴다. 550l(리터) 용량의 술덧을 한번에 증류설비에 넣어 증류시킨다. 증류기는 특별 제작한 국산 장비다. 제조 설비회사와 오세용 대표가 감압증류기를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번 증류하는 소주와 달리 보드카와 진은 세번 증류 공정을 거친다. 보드카는 처음 두번은 감압증류, 마지막 세번째 증류는 상압증류한다. 2차 감압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병입단계 직전에 마지막으로 상압증류한다. 그 다음에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를 시켜 술을 완성한다. 진은 조금 다르다. 두번 감압증류하는 것은 같지만, 허브(주니퍼베리)를 집어넣어 24시간 이상 침출을 시킨 다음에 그 액을 다시 상압증류한다.

보드카가 어떤 술인가? 무색, 무취, 무미의 술이다. 그래서 쌀소주 특유의 맛과 향을 빼야 한다. 기본적으로 감압증류는 맛과 향을 빼는데는 상압증류보다 유리하다. 상압과 달리, 담백한 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3차 증류까지는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는게 오세용 대표의 설명이다. 2차 감압증류만 하거나, 1차 감압, 2차 상압정도면 무난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쌀로 만든 술이 그렇게 이취(잡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리, 감자 등으로 만든 술보다는 기본적으로 순하다.

증류가 끝난 제품은 최소 6주 정도는 숙성시킨 뒤 병입한다. 숙성탱크에서 숙성. 알코올 도수를 맞춘 뒤 후숙성 기간도 거의 한달이 또 걸린다. 그리고 나서 병입공정에 들어간다. 실제로 숙성만 거의 10주를 하는 셈이다.

이곳에선 다른 전통주 양조장에서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가뜩이나 좁은 양조장을 더 좁게 만드는 20여개의 오크통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오세용 대표의 설명이다.

“이 오크통은 소주를 차별화하고, 수출도 염두에 두고 들여왔다. 쌀소주를 오크통에 숙성하면 어떻게 될까? 희석식소주 업체 한 곳이 오크통에 숙성한 사례가 있지만, 워낙 물을 많이 타서 오크통 숙성효과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오크통 숙성이 일반화돼 있는 위스키처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선, 적은 양의 소주를 오크통에 숙성시켜 맛을 보게 했더니 주변 사람들의 평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걸 제품화하기로 했다. ‘마한 오크’는 올 여름 혹서기에 제대로 숙성을 거친 뒤 오는 가을에 출시한다.”

오 대표는 수입산 오크통 대신, 국산 오크통을 선택했다. 충북 영동에 국산 오크통 제작업체가 한군데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참나무 목질이 외국산에 비해 그리 단단하지 못한데다, 제조 기술 부족으로, 오크통 속의 술이 스며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한 오크는 이미 국세청, 식약청 승인 절차를 마쳤다. 숙성기간은 일년, 알코올 도수는 40도로 정했다.

오세용 대표가 오크 숙성 소주의 상품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어느정도 근거가 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국내 주세법에는 ‘오크통 숙성’ 표기를 하려면 최소한 일년은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일년 숙성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더 오래 숙성하면 당연히 더 맛이 좋아지겠지만, 일년만 숙성해도 맛이 괜찮다. 무더운 한여름 2~3개월 숙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일년 숙성의 80~90%는 그때 일어나는 것 같다.

온도가 올라가면 결감(오크통 보관 중에 술이 증발하는 현상)하는 술량도 많아지겠지만, 속성 숙성이 이뤄져 일년만 오크통에 둬도 오크 숙성의 효과를 일반인들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한국보다 더 더운 대만의 경우, 스코틀랜드 5~6년 위스키 숙성을 일년만에 하고 있다.

속성 숙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여름철 더위는 증류주 오크 숙성에는 축복이다. 오크통 숙성 외에 초음파 기술로 속성 숙성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술의 차별화는 숙성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증류주를 차별화할 수 있는 게 숙성이다.

와인같은 발효주를 숙성하는 것은 저온이 유리하겠지만, 증류주, 위스키는 좋은 숙성조건이 와인과 다르다고 본다. 오히려 기온이 높은 것이 숙성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가 증류주 숙성 조건은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보다 낫다고 본다. 다만 휘발돼 없어지는 술량이 많다는 것은 단점이다.”

오 대표와 기자는 보드카를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시키는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보드카 제조 공정의 핵심은 3차증류까지 한 술을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시베리아산 자작나무 숯을 분말로 만들어 술을 여과시킨다. 오세용 대표는 “숯의 흡착력을 높이기 위해 분말을 냈다”며 “증류주에 분말 숯가루를 집어넣어 24시간 가량 지난 후 여과 공정을 거치면 맛과 향을 더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숯으로 흡착, 필터링을 진행하기 전과 후의 증류주 향과 맛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오 대표의 대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3차 증류까지 한 술과 이를 다시,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까지 한 술은 내 입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보드카의 경우, 자작나무 숯 여과를 의무적으로 하게 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 소주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드카라고 이름 붙이려면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하라는 게 국세청 지침이다. 법적인 요건 때문에 자작나무 숯 여과를 하는 것이다. 사실은 감압증류를 두차례나 진행했기 때문에 곡물 고유의 향, 입국 향 등은 이미 거의 없는 상태다. 때문에 숯 필터링을 거쳐도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주세법상 보드카라는 술로 판매하려면 자작나무 숯 여과를 거쳐야 한다.”

쌀 증류주로 처음 보드카를 만든 오세용 대표의 고민은 ‘차별화’였다. 그리고 그 해법을 그는 원료에 두었다.

“보드카 개발 당시, 여러나라 보드카를 구해 맛과 향을 봤다.

사실 보드카만큼 차별화하기 어려운 술이 없다. 왜냐하면 무색, 무미, 무취가 보드카의 특성인데, 기존에 나와 있는 보드카와 정말 차별화된 새로운 보드카를 내놓기는 어려웠다. 향이라도 있으면 차별화해보겠는데, 보드카는 정말 차별화가 어렵다. 향이 없게 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차별화하기가 정말 난감하다.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맞다. 무향의 술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나? 다만, 나는 쌀술 증류원액으로 보드카를 만들었다. 대개는 알코올 95도 정도의 주정을 희석(물 타는 것)한 뒤 필터링을 거쳐 보드카를 만든다. 원료의 차별화는 확연하다. "

양조장을 둘러본 뒤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앞서 그가 보여준 이력서는, 그가 그동안 숨돌릴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학부, 석사를 마친 뒤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사, MIT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IBM 본사에서도 6년을 근무하고 국내로 들어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15년을 근무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있던 그를 다시 부른 것은 SK하이닉스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생산담당 사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나서 1인 양조장 스마트 브루어리를 만든 게 2019년이다.

-삼성전자 부사장, SK하이닉스 사장까지 지낸 분이 소규모 양조장을 차린 이유는?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평소에 술을 좋아했다. 술도 특정한 술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위스키, 와인, 한국의 전통주 등 고루 마셨다. 공돌이(공대출신)라 그런지 술 마실 때마다 ‘이 술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왜 이맛이 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술에 대한 궁금증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런데, 대기업 경영자 역할을 오래하다보니 외국손님 접대나 부하사원 회식이 적지 않다. 직원 회식 때에는 희석식소주 마시는 게 흔했고, 문제는 외국사람 식사할 때였다. 사실, 마땅한 한국술이 있으면 그 술을 내놓고, 자랑도 할텐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서양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와인 얘기부터 하는게 기본이다. 우리도 외국사람 앞에 자랑할 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삼성전자를 그만뒀다. 대기업 고위임원으로 오래 근무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다보니 공황 상태 비슷했다. 그래서, 취미생활은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술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술공부를 했다. 경기대학교 수수보리아카데미 1년 과정을 다녔다. 이론수업은 기본이고, 실습, 시음을 하면서 강의를 들으니까 살면서 그렇게 재미있는 강의는 처음 들었다.

그다음부턴 직접 술을 만들어 술자리에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삼성 다닐 때는 사람 만나기가 정말 쉬웠다. 누구나 삼성 얘기 듣고 싶어하니까. 그런데 막상 삼성을 나오니까 나 스스로도 사람 만나는게 좀 꺼려지고, 주변 사람들도 내가 보자고 하면 ‘왜 보자고 하지?’ 이런 생각들을 하는것 같아보였다. 그런 어색함을 깨는데 술 만한 게 없더라. ‘제가 술을 만들었는데, 다 익었습니다. 같이 맛 한번 보시죠’ 이렇게 말하면 100이면 100명이 다 좋다고 하더라. 부담없이 만나는데 술만한 마중물이 없다. 당시 내가 만든 술을 마셔본 분들이 지금 내 주요 고객들이다.”

-삼성 퇴직 후 술을 공부했고, 정작 양조장을 차린 것은 SK하이닉스 사장을 그만두고서였다.

“술 강의를 들을 때 마셔보고 감동했던 술 중에 ‘석탄주’라는게 있다. ‘너무 맛있어 삼키기 안타깝다’는 의미로, 멥쌀로 밑술을 하고, 찹쌀로 덧술을 한 약주다. 물을 안타서 알코올 도수가 15~16도 된다. 그런데 석탄주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맛을 보여주니까 ‘이렇게 맛있는 술이라면 사업을 해봐라’ 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석탄주 사업은 엄두를 못냈다. 이런 술은 진입장벽이 없다. 그게 사업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면 누구나 뛰어들테고, 누구나 만들 수도 있는 술이다. 또하나 엄두를 못낸 이유가 영업이다. 그럭저럭 생산은 할 수 있지만 내 성격상 영업은 맞지 않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 술 좀 넣어주십시오’ 이런 영업은 하기 어려웠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 또 내 적성과도 술 창업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SK하이닉스에서 사장으로 와달라고 해서 2013년부터 3년간 근무하다 2015년에 퇴직해서는 실제로 술 창업을 했다. 맘이 변한 것이다. 그 사이에 다른 일도 좀 하다가 2019년에 양조장 스마트 브루어리를 설립했고, 2020년에 술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브루어리의 첫 제품인 ‘에스 원’은 이름부터 작은 논란이 됐다. 왜 ‘에스(S) 원’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세용의 S냐, 삼성의 S냐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보안회사와 이름이 똑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이 술이 삼성을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에스 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스마트브루어리 1번 제품이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캘리포니아 특급 와인 중에 ‘오푸스 원’이란 와인이 있지 않나.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와 프랑스의 무통 로칠드사가 합작해서 만든 와인인데, 평소 기가 막히게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푸스 원에서 영감을 받아 제 첫 작품 이름을 ‘에스 원’이라 붙였다.”

오 대표는 에스 원(20도) 도수가 너무 낮아 증류식소주다운 맛이 약하다고 여겨, 알코올 도수를 다소 높이려고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부드러운 소주’에 방점을 찍고 알코올 도수를 20도로 했는데, 너무 낮은 것 같아 23도 정도로 높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도수가 25도인 ‘청람’이다. 청람은 마시기 좋은 소주다. 입국을 사용하고, 감압증류방식으로 만들어, 부드럽고 경쾌하면서 은은한 배향, 사과향과 함께 바디감(묵직함)도 좋다는 이들이 많다.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지만, 은은한 단맛의 여운을 남긴다.

‘마한’은 알코올 도수가 36도다. 국내 중국식당에서 독보적으로 잘 팔리는 백주가 ‘연태 고량주(34도)인데, 연태고량주를 상대할 우리 술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든 게 마한이다. 청람과 마찬가지로 감압증류했다. 청람, 마한이 거의 반반씩 판매된다.

-알코올 도수 다른 것 외에 청람(25도)과 마한(36도)의 차이점은?

“청람은 증류 과정에서 초류(증류 초기에 나오는 증류액)를 많이 쓴다. 초류의 향이 짙기 때문이다. 술의 도수가 높으면 자연스레 향도 진한데, 물을 상대적으로 많이 타는 25도 술은 향을 살리기가 36도에 비해 힘들다. 그래서 초류는 청람을 만드는데 많이 쓴다.”

쌀소주를 베이스로 오 대표가 국내 처음으로 만든 술이 보드카 ‘무심’, 진 ‘청풍미향’이다.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한 덕분인지, 보드카 무심(45도)은 도수가 낮은 마한(36도)보다 가볍고, 부드럽다. 진 청풍미향(45도)은 은은한 증류식소주의 향과 함께 진 특유의 주니퍼베리 향과 모과향, 사과향이 느껴진다. 얼음과 함께 언더락으로 마셔도 좋고, 진토닉, 마티니 같은 칵테일로 마셔도 좋다.

-무심과 청풍미향은 가격도 착하다.

“그렇다. 무심(375ml)이 2만원, 청풍미향(500ml)이 2만5000원이다. 외국의 같은 술과 비교를 해서 가격을 정했다. 외국의 보드카, 진이 있는데, 이런 술들이 한국에 들여오는 수입원가보다 더 받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러다보니 보드카와 진은 거의 제조원가 수준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산 진을 만드는 다른 분들은 한병에 5만원, 8만원도 받고 있는데, 주류 도매상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주류전문점을 거쳐 판매하려면 최소한 30~40%의 마진을 붙여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온라인에서만 팔고 있어, 중간마진을 없앨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보드카와 진은 가격은 착하지만, 가정에서 소비하는 게 적어 판매는 많지 않다. 증류주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는 보드카와 진이 도움이 되겠지만, 캐시카우 측면에서는 10년 지나도 힘들 거로 본다.”

-국산 증류주는 옹기 혹은 스테인레스 숙성탱크에 숙성시키는데, 스마트 브루어리는 국산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20여개)에 쌀소주를 숙성 중이다. 스테인리스 숙성과 오크통 숙성 술의 차이는?

“전혀 다른 술이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소주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주와 다른 술이 탄생된다. 소주보다는 오히려 위스키에 가까운 맛의 술이 된다. 색깔, 향, 맛이 위스키에 가깝다. 여름을 거칠 경우 6개월만 오크 숙성하면 색깔이 호박색(전형적인 위스키 색상)보다 진해진다. 다만,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아주 천천히 숙성이 진행되기 때문에 색깔과 향이 짙지 않다. 올 가을에 나올 신제품 ‘마한 오크’는 올 여름을 거치기 때문에 제대로 숙성된 색, 향, 맛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름은 마한 오크로 정했다. 스테인리스 숙성 마한은 36도, 마한 오크는 40도.

술의 거친 맛을 부드럽게 하고, 향을 짙게 하는 ‘숙성’은 많은 사람들이 저온 숙성만 생각해, 숙성공간을 서늘한 지하실, 터널 등을 떠올리는데. 저온 숙성은 대부분 와인 숙성에 해당되는 얘기다. 와인같은 발효주는 저온 숙성이 맞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도 저온숙성을 하는데, 그건 그지역 기후조건이 저온숙성에 알맞기 때문일 것이다. 고온숙성이 숙성에 효과가 많은 것을 그 사람들도 알았더라면, 아마 숙성장소를 다른 곳(훨씬 기온이 높은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몇년 전 대만 위스키가 위스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바로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 숙성한 위스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속성 숙성의 위력을 대만이 보여준 것이다.

마한 오크는 일년 오크통 숙성해서 병입할 예정이다. 오크통 일년 숙성은 국세청이 요구하는 최소 숙성요건이다. 물론, 더 오래 숙성하면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오래 숙성해 비싸게 팔 생각도 없고, 일년만 오크숙성해도 맛이 훌륭하다고 본다. 착한 가격에 팔아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오크숙성 소주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마한 오크(375ml)는 2만5000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마한은 1만4000원(375ml).”

세계적인 전통주, 특히 증류주는 일반적으로 화이트(무색 투명)와 골드 계열로 나뉜다. 위스키가 처음 나왔을때에는 보리나 밀을 발효시켜 증류한 화이트 계열이었으나 과도한 세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몰래 만들다 보니 버려진 셰리와인 오크통에 보관하면서 지금의 골드 계열의 위스키로 탄생하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에, 옹기문화 전통이 강한 한반도는 나무통 문화가 발전하지 못해, 나무통 숙성의 전통은 없었지만, 전통주의 발전적 측면에서 ‘오크통 숙성’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의 전통주인 소주도 옹기, 스테인리스, 나무통 등에서 숙성 시킨 다양한 술이 나와 소비층을 넓히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해외 양조장은?

“증류주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가본 곳이 일본 오키나와 ‘카리 양조장’이다. ‘소주의 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소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심지어 소주에 커피를 탄 술도 만들고, 과일향 탄 것들도 만드는 양조장이다. 소주의 변신을 처음 보았다. 변화와 혁신이 ‘침체된 소주 시장의 돌파구’라고 여기고 다양한 신개념 소주를 만들고 있었다. 일본 소주시장도 굉장히 정체돼 있는데, 결국은 신세대를 타겟으로 해야 되고, 그럴려면 과일향, 커피향, 화려한 색소 등이 굉장히 중요한 부재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업계도 참조할 내용이 많았다.”

-하이닉스 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소규모 양조장을 차린데 대한 오해는?

“삼성에서 10년 이상 임원을 하고, 하이닉스 사장을 3년이나 한 사람이 무슨 돈이 궁하다고 술사업을 하나? 이렇게 딱하다고 보는 부류가 있고. 또 하나는 고향인 청주에 은퇴해서 뒤늦게 귀농 비슷하게 하니 나중에 지역 국회의원이나 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억측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술이 좋고, 술 만드는 게 좋고, 내가 만든 술을 사람들이 기분좋게 마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술 사업을 한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좋은 술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할 욕심은 있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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